충청도산행지

속리산문장대~천왕봉산행(2013,12,22)

김동길 2013. 12. 24. 03:21

 

 

 

 상주 화북주차장

단체로 한캇~~

나그네 인증샷~~

 

 오늘도 안산을 위하여 몸풀기시작

 

 

산행초입에서 인증샷한번날이고서리

 

문장대 올아가는 중턱에서~~

 

 

 

 

 

 

 

 

 

 

설원에 정취

 

 

문장대에 몰여던 산우들 단체로 모여앉아 점심먹는모습들~~

 

 

덩걸홀로선 문장대모습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岩峯)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운장

         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世祖)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

         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고 하여 문장대(文藏臺)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문장대 밑바닥입니다~~~

 

 

 

 

문장대 방구만디에서~~

산우들은 간데앖고 텅빈문장대 만디~~

 

 

 

문장대에서본 상주쪽풍경

 

 

오늘문장대는 나그네 꺼다 ㅎㅎㅎ

 

속리산 문장대(1033m)2013.12,22

  속리산 문장대뒤면에 새긴글씨

 

                     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道를 멀리하였고

                     산은 世俗을 떠나지 않았는데 世俗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俗離山 문장대 1054m

                     구름 속에 갈무리 져 雲藏臺라 하였다가

                     世祖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文藏臺라 했으니

                     우러러 宇宙의 장대함을 보고

                     구부려 品類의 繁盛함을 살핀다는 奇妙의 極致

                     頂上에는 알이 부하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으니

                     태초 生命 탄생의 神秘를 일러 주도다.

                     동쪽으로는 칠형제봉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황봉이 이어졌고

                     서쪽으로 관음봉 묘봉이 솟았으며

                     비껴서 낙영산과 도명산이 다가선다.

                     남쪽 아늑한 곳에 법주사를 앉혀 法脈을 잇게 했으니

                     빼어난 기품 浩然의 氣槪여

                     造物主의 조화여 오! 仙界의 아름다움이여!

 

옛날표지석

 

 

 

 

신선대 (1026m)2013,12,22

오늘에맛난점심들~~

 

 

신선대올아본 문장대풍경~~

 

 

 

 

 

 

 

거대한 고릴라앞에서 인증샷~~

 

 

 

 

 

 

 

 

 

 

 

경업대에서

 천왕봉 올아가는길

 

 

 

속리산 천왕봉(1058m)2013,12,22

천왕봉에서 내려본 눈덮인 고봉준령 이런장관보려 산에오르지 넘넘존내요~~

꼭 한번 삐데보고파던 속리산 천왕봉 정상

멀이 문장대가보이는 고봉준령들~~

1973년고등학교 여름방학에 병춘,동원 셋이서속리산완주한다고 수정봉 ,관음봉,묘봉산행하고 하산하였다

그후문장대는 관광으로 몇번가서나,천왕봉은이번에 40년만에 정상을 등정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문장대

 

 

상환석문

 

잘자란 금강송

상환암 주위~~

 

 

결빙된 상수원지

 

 

 

 

산사 금강문에서본 전경

눈내린 속리산 법주사 전경

 

 

 

대웅보전과 사천왕석등

속리산 법주사 미륵불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의신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혜공왕12)에 진표가 중창하였다. 법주사라고 한 것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특히 청동 미륵대불은 경내에 있으며, 당초에는 청동으로 주성되었으나 조선조 때 대원군이 경북궁 중건을 위한 당백전 주조 목적으로 철거하여 1939년 김복진 선생에 의하여 백척의 시멘트 미륵불로 1964년에 완성되었다. 1987년 4월 낡은 시멘트 미륵불을 철거하고 원형을 다시 복제하여 청동으로 제작 1990년 4월 12일 높이 33m 두께1,320mm 청동이 160톤으로 세계 최대규모이며, 지하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평의 석굴 법당과 122평의 유물 전시관이 있다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 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여두는 화사석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 (720)으로 추측되며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 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법주사 사천왕석등 (보물 제15호)과 함께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철확(보물제1413호)20톤주물솥

당간지주

 

지정 번호; 국보 64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속리산면 사내리 209) 속리산 법주사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시대; 통일신라(8세기)

•분류; 석련지

•내용; 보은 법주사 석련지는 법주사의 천왕문을 들어서면 안쪽 오른편에 있으며, 높이는 1.95m, 둘레는 6.65m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예전에는 물을 담아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여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 수 있다.

  법주사 석련지는 8각의 지대석(地臺石; 받침돌)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覆蓮;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 1층을 첨가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가 장식된 중간석을 끼워서 연지를 받치고 있다. 표면에는 밑으로 작은 연꽃잎을 돌려 소박하게 장식하였고, 윗부분에는 큼지막한 연꽃잎을 두 겹으로 돌린 후 그 안으로 화사한 꽃무늬를 새겨두었다. 몸돌은 커다란 돌의 내부를 깎아 만들었는데 반쯤 피어난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그 쓰임과 잘 어울리며, 외부의 곡선과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입구 가장자리에는 낮은 기둥을 세워 둥글게 난간을 이루었는데 그 위로도 짧은 기둥을 새긴 후 난간 모양이 되도록 조각해 놓아 마치 난간이 두 줄로 된 듯하다. 윗 난간에 세워진 기둥은 아주 기발한 착상이라 할 수 있는데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에 새겨진 돌난간의 기둥과도 비슷하여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밑의 난간 벽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 놓아 화려함을 한층 더 살려준다.

•감상 포인트;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절제된 화려함 속에 우아함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는 석련지의 대표작이라 불리울 만하다. 다만 크게 갈라진 연지의 몸돌을 쇠붙이로 겨우 이어놓아 안타까움을 주고 있으며,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2013년 마지막산행 보은 속리산 문장대 천왕봉산행 존날씨에 안산,즐산하고 법주사도 잘관람하였다

올해는 100대명산 10곳 답사하였다 내년 갑오년은 더많은곳을 산행하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