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노서리고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봉황대(2013,8,4)
천마총은대릉원,식이총,금령총 은노동리고분,금관총 서봉총은 노서리고분에 위치하고있다
봉황대 표지석에서 ~~~~
노서리 고분 전경
봉황대에 자란 고목들 마치 뒷동산을 연상케한다
노서리고분일대 정비되기 전모습 봉황대가 마치 뒷동산처럼 보인다
관리인에게 나무를 왜안자러는야고 여쭈었드니 나무가 고목이라서 어러지도 저러지도못하고 그냥둔데~~아! 걸씨~~
봉황대앞 종각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걸려있던곳이다(1915년전)
에밀레종이걸려있던종각과 봉황대주변 전경
성덕대왕 신종(에밀레 종) 이전 - 1915년대
봉황대에 있던 종을 경주고적보존회(현 경주문화원)로 옮기고 있다.
2013,11,17봉황대에서~~~
눈덮인 봉황대모습
2012,12,31
4호국도넘으로 눈덮인 황남 대릉원 설경(천마총있는곳)2012,12,31
2013,11,17 늦가을 금관총모습
금관총에 잘 핀 배롱나무
1921년 집터를 고루다 우연히 발견한 금관총 발굴모습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빈터에 걸터앉았어
봉분이 훼손되어있는 식리총도 금령총과 같은해에 발굴되어 금동제식리(신발)이 출토되어 식리총이라 부른답니다
1958년도황남대등원일대와 노서리고분일대모습
지금에모습
경주형상강지류 금장면 애기청수 금장대에 황포돛대떳다(2013,7,7)
경주여덟가지의 괴이한 현상인 8괴(8怪)
1. 남산부석(南山浮石) :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남산의 바위
2. 문천도사(蚊川倒沙) : 남천의 모래는 물 위에 떠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3. 계림황엽(鷄林黃葉) : 계림 숲에서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래 진다.
4. 금장낙안(金丈落雁) : 기러기들이 쉬어 가는 현곡면의 금장대.
5. 백율송순(柏栗松筍) : 백률사의 소나무는 가지를 친 뒤에 솔순이 생긴다.
6. 압지부평(鴨池浮萍) : 안압지에 있는 마름은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는다.
7. 불국영지(佛國影池) : 불국사의 다보탑은 영지에 비치고 석가탑은 비치지 않았다.
8. 나원백탑(羅原白塔) : 지금까지도 순백(純白)의 빛깔에 변함이 없는 통일 신라의 탑.
*신라3기
1. 금자(金尺): 박혁거세가 신라왕으로 오르자 하늘에서 준 금으로 만든 자 입니다.
이 금척은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중국 황제가 이 금척을 탐낸다하여 금척을 땅에 묻고 그 주위에도 많은 봉분을 만들어 어느 곳에 묻었는지 모르도록 하였습니다. 아직도 금척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2. 만파식적: 이것은 옥저라고도 합니다. 신라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를 짓는 효성을 보여 동해 바다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신이 된 김유신의 혼령이 서로 힘을 합쳐 신령스런 대나무를 신문왕에게 보냈습니다.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만파식적이라고 하는데 이 피리는 근심걱정을 없애주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고 합니다.
3. 화주(火珠) : 빛깔이 수정과 같고 햇볕을 받아 비추면 솜에 불이 붙었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이 지니고 있던 수정 돋보기로 태양에서 불씨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나 이 화주 대신 성덕대왕신종 또는 진평왕 옥대를 꼽는 이도 있습니다. 옥대는 길이가 5자 (약150cm) 나 되고 62개 의 구슬이 달린 허리띠입니다. 이것은 진평왕이 왕이 되던해 제석천이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경북 경주시 서면 신평리의 여근곡, 신라선덕여왕 5년(636년)에 신라를 침공한 백제병사들이 이 계곡에 몰래 숨어있다가 몰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전해 오고 있다. 이 여근곡은 산지형이 흡사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다 하여 여근곡이라 전해진다.
선덕여왕의 세가지 예언 :
"꽃을 그린 그림에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으로써 그 꽃이 향기 없음을 알았다. 그것은 곧 당나라의 임
제 27대 덕만의 시호는 선덕여대왕, 성은 김씨, 진평왕의 따님으로 부왕을 이어 당 태종 6년에 즉위했다.
이 여왕에겐 나라를 다스린 지 15년 동안에 앞일을 예지한 것 세가지가 있다.
1, 당나라 태종이 홍색.자색.백색, 이 삼색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그 씨앗 석되를 보내왔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 고 말하면서
그 씨앗을 궁전 뜰에 심어보게 했다. 꽃이 피어서 지기까지 과연 향기라곤 없어 선덕여왕의 그 예언은 맞았다.
이것이 세가지 예지한 것 중에 그 첫째이다.
2, 추운 겨울날이다. 영묘사의 옥문지에는 난데없는 개구리 떼가 모여들어 삼사 일 을 두고 울어댔다.
나랏사람들이 해괴한 일이라 생각하여 왕에게 물어보았다.
여왕은 옥문지에 개구리가 모여 울어 댄다는 얘기를 듣고서 급히 각간 알천과 필탄등에게 명하여
날쌘 군사 2천명을 뽑아 서울의 서쪽 교외로 달려가도록 했다.
가서 여근곡이란 골을 물어 찾아가 보면 거기에 틀림없이 적병이 잠복해 있을테니 습격해 죽이도록 명령했다.
두 각간이 왕명을 받고서 각각 천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 달려가서 물어보았더니
그곳 부산 기슭에 과연 여근곡이란 골이 있고, 거기엔 백제의 장군 우소란 자가
남산령 바위 위에 숨어 있는 것을 포위하여 사살하고, 또 백제군의 후속부대
1천3백여 명이 닥치는 걸 공격하여 한 사람 남김 없이 죽였다.
이것이 선덕여왕의 그 세가지 예지한 것 중의 둘째의 것이다.
3, 세번째 것으로는 왕이 아주 건강할때인데 그 신하들을 보고서 나는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에 죽게 되겠으니
장사를 도리천안에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신하들은 그 도리천이 어느곳인지를 알수 없어 왕에게 물어 보았더니
왕은 그것이 낭산의 남쪽 비탈이라고 했다. 왕이 예언했던 그날이 되자 왕은 과연 죽었다.
신하들은 왕의 당부에 따라 서울의 남쪽 근교에 있는 낭산의 남쪽 비탈에 장사지냈다.
그로부터 30 뒤 문무대왕은 선덕여왕의 능 아래에다 사천왕사를 창건했다.
불경에서 사천왕천은 수미산의 중턱에 있고 그 위에 바로 도리천이 있다고 한 말을 상기하고서
그제사 선덕여왕의 거룩함을 알았다.
..
여왕이 생존해 있을때 신하들이 모란꽃과 개구리에 관한 예언을 두고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수 있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왕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이 내가 여자로서 짝이 없이 독신으로 지내는 걸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개구리는 그 눈이 불거져 나와 성난 형상으로 생겨 있어 그것은 병사의 상징이다. 옥문이란 곧 여근이요, 여자는 으모가 양 중에 음에 속하고, 그 빛깔은 휜것이요, 흰 빛깔은 서쪽을 상징한다. 그래서 적의 병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남근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라, 그러므로 그들을 쉽게 잡을수 있음을 알았다."
이 설명을 듣고 뭇 신하들은 모두 그 성지에 감복했다.
당나라 임금이 세가지 빛깔의 모란꽃을 보낸것은 신라에 세 여왕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서 그렇게 한것인가. 세 여왕은 바로 선덕, 진덕, 진성이다. 이로써 당나라 임금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겠다. 선덕여왕이 영묘사를 창건한 일에 관해서는 < 양지사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별기에는 이 선덕왕 연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했다.
경주 안압지야경 (반영)